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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54 1986년 간행된 <조선어 소사전>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0-08-25 12:55 | 54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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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54  1986년 간행된 조선어 소사전  (글 장혜순) 


우리들의 돛단배를 짓다

재일조선인의 중등교육이 40주년을 맞이한 1986년 5월, 조선학교 아이들이 조선어를 배우기 위한 사전 <조선어 소사전>이 간행되었다. 1세 언어학자, 조선학교 교단에 섰던 교사…. 조선어교육 발전을 위해 사전 만들기에 힘을 쏟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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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넣은 올림말 수는 1만 8,390개 

“재일조선인이 일본어 언어 환경 속에서 모국어를 배우고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모국어를 활용하려면 무수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더욱이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2세 이후 세대가 처음으로 모국어를 습득하고 그것을 정확히 사용할 수 있으려면 체계적인 언어교육과 함께 그들이 놓여있는 실정에 맞춘 사전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판된 사전에는 초·중급 수준을 넘는 단어가 많고 게다가 대부분은 너무 커서 이용하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다.”(<조선어 소사전 편찬취지> 학우서방 작성, 1986년 5월)


사전 만들기가 시작된 것은 1978년. 때는 단카이 주니어(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가 대거 입학한 무렵으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3세대들이 많이 증가한 때였다. 조선반도 출신인 1세가 삶의 현장에서 줄어드는 언어 환경, 모어가 일본어라 조선어를 제2언어로서 배우는 초급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조선학교의 조선어교육은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사전편집은 교과서 제작회사인 학우서방이 맡았다. 편집위원은 편집국장인 김영길(1세), 조선어학자인 박정원(1세), 김용안(1세), 김광숙(2세)씨까지 4명으로 전원이 조선학교 교원 경험자다. 삽화는 이경우 씨, 교정은 이덕호, 김영치, 이성출, 이순영 씨 등이 담당했다. 


조선어 소사전은 초급부 4학년부터 중급부까지 6년간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기초 작업은 78년부터 시작했다. 편집위원들이 가장 고생했던 부분은 총 1만 8,390개에 이르는 올림말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조선학교에서 사용 중인 교과서의 어휘조사에서 수집한 약 8,000개의 단어를 기본으로 하면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말을 추가해 처음에는 수록할 단어를 1만 3,000개로 정했다. 그 후 국어 수업요강(소·중학교)에 있는 지도어휘와 분야별 어휘체계에 결여되어 있는 부분을 보충하고 올림말을 1만 8,390개로 정했다. 


박종원 씨는 사전을 출간한 해 연말에 사전 만들기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처음에 착수한 일은 교과서의 어휘조사였는데, 수 십 만장의 단어 카드를 정리하는 것과 올림말을 선정하는 작업은 ‘질리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의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조선어 소사전>에 담은 올림말은 교과서 어휘를 근거로 객관적인 조사방법을 추가해 네이티브 스피커, 모국어 자료 제공자(informant)로부터 얻은 기본어휘를 보충하고, 나아가 초·중급학교의 교육어휘가 더해졌다. 이 작업은 순조롭지 않아서 많은 진퇴양난을 겪었다.”(<『조선어 소사전』을 편찬하고>, ‘조선신보’ 1986년11월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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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말 선정은 초급학습자를 위해 두 가지에 유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첫째는 쉽게 단어를 찾기 위해 음성이 달라지는 말(용언의 역사적 교체)은 변화한 형태를 올림말로 세우고 주석에 원형을 넣었다.(예: 서툴러→서투르다)

두 번째로 고유명사는 나라이름, 역사적 사건(인명은 제외), 지명, 단체 등의 명칭을 넣었는데 초·중학교 교과서에서 추출했다. 


어휘 설명은 알기 쉽게

의미의 주석은 조선대학교를 비롯한 현장 교사의 협력을 받아 학우서방의 편찬위원이 썼다. 어휘의 의미를 조선어로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일본어 대역을 병기한 것도 특징이다. 또 발음이 변화하는 말은 표기를 추가하고(예: 다듬다[따]), 장음으로 발음하는 부분을 표기했다. 조선어를 일본어를 통해 이해하는 3세의 특성에 맞춰 본문과는 별도로 일본어 기본어휘 중에서 1만 개 단어를 엄선해 조선어 대역을 넣은 것도 특징이다. 


또한 말뜻의 주석은 기본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출판된 <현대 조선말 사전>(1981, 과학·백과사전출판사)을 바탕으로 조선어사전(1960년, 과학원 언어문학연구소), 조선어 규범집(국어사정위원회, 1969년), 조일어휘집(1982년, 외국문도서출판사), 일조사전(1976년, 평양외국어대학)등도 참고했다. 대부분 모든 올림말을 의미별로 예문을 넣고 단어결합의 예를 넣었다. 

“의미 주석을 넣는데 더 많은 고심을 한 것은 의미가 단순히 말의 치환이 아니라 본질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데 힘을 쏟은 점이다. 체언이나 말은 감각, 감동을 드러내는 단어에서 추상화, 일반화된 개념을 나타내는 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다양하다. 그러나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많든 적든 개념과의 관련성에 중심에 두어 주석을 달지 않으면 안 된다.”(박종원 씨)


편집위원 가운데 한 사람, 김광숙 씨(78, 도쿄도 거주)는 “박선생이 많은 일을 하셨어요. 사전 만들기는 처음이기 때문에 여러 곳에 조사하러 가야했습니다. 남쪽에서는 한 권의 사전을 만드는데 수 십, 1백 명 단위로 사람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정월 휴가도 반납하고 자택에서 줄곧 교정을 한 것도 기억납니다.” 라고 회상한다. 조국으로의 귀국이 실현된 1959년에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도쿄 제2초중(당시), 도쿄 제7초중(당시)등 10년간의 교원생활을 거쳐 학우서방에 근무, 조선어 교재 만들기에 종사해 왔다. 


완성된 사전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1978년부터 시작한 사전 만들기는 84년까지 사식(寫植, 사진 식자기로 인화지나 필름에 직접 글자를 한 자씩 찍는 일) 작업이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 후 교정이 거의 10차례에 이른다. 조선의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최종 교열도 받았다. 

“완성된 사전을 손에 들었을 때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김용안 씨가 ‘여기까지 정말 잘 해냈다’며 칭찬하셨지요. 아이들이 민족에 대한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선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내서 다행입니다.”

당시의 이야기에 감격하는 김용안 씨. ‘교육현장에서 쓸 수 있는 사전을’ ‘아이들이 사용하기 쉬운 사전을’ 만들겠다는 일념이 사전 만들기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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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 소사전에는 아이들이 조선어와 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부록으로 원색도감과 도표를 풍성하게 넣었다. 조선지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과 국기, 광물, 호랑나비와 연어의 일생, 곤충, 길짐승, 닭, 물고기, 수중생물, 담수어, 꽃, 과일, 조선의 전통악기 등이다. 본문에도 800여 점의 삽화를 넣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사전의 삽화와 표지를 담당한 이는 이경우 씨(79). 조선반도에서 건너 온 1세로 히가시고베 조선초중급학교(당시), 도쿄 중고를 졸업한 후 도쿄 조선제5초중급학교에서 미술교원으로 근무했다. 25세부터는 문화예술동맹 미술부에 소속, 1세 화가인 김창덕 씨(1910~82) 자택 2층에 하숙하면서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다녔고, 30세부터 35년간 학우서방에서 근무했다. 


조선어 소사전에 그려 넣은 삽화는 엽서크기의 도화지에 이씨가 한 장씩 일일이 그렸다. 

“창작이 아니기에 사물을 정확하게 옮기고 세밀하게 그리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일본의 도감이나 조선에서 출판된 동물사전이나 식물사전도 참고했습니다. 사전이 세상에 나온 후에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이용가치가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현재 학우서방에서는 새로운 조선어사전을 제작중이다. 



* 월간 <이어> 8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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