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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시리즈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간판 이야기_ <우리학교 풍경>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0-08-14 21:55 | 1,022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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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교문 간판 이야기

잡지 <우리학교 풍경> 2018년 11월 25일 기사 번역 本文を見に行く(본문 보러 가기) --> https://www.urihakkyo.com/2018/11/25/kanban-nurikae/

글. 김일우&신길웅 (도쿄조선고급학교 18기생) 


10월 19일에 직장에 가기 전에 도쿄중고로 향했다. 누군가 교문 간판을 한창 새롭게 칠하고 있다. 깊이 쓴 모자 사이로 백발이 삐져나와 있다. 

“안녕하십니까.” 인사를 건넸다. 

“일우 동무. 오늘은 무슨 일로…” 

도쿄 중고 5기생, 미술 교원으로 긴 세월 재직했던 한동휘 선생님의 낯익은 얼굴.

“마침 잘 되었어요. 사진 한 장 부탁합니다.” 

선생님의 디지털카메라로 작업 모습을 몇 장인가 찍었다. 

“오늘은 이 간판을 찍으러 왔어요.” 라고 하니까

“몇 번이나 경찰이 순찰 왔어.” 

라며 딴소리하신다. 

들어보니 간판에 누군가 혐오 낙서를 해 신고를 했고 그래서 경찰이 순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동휘 선생님이 오셔서 간판을 다시 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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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는?”

며칠 전에 조선대학교 도서관에서 「해방신문」​1 을 보다가 옛날 교문의 간판 사진을 우연히 발견했고 직접 그 사진과 비교해 보려고 왔다고 이야기했다. 

잠시 지나니 학교 안에서 나온 도쿄조선학원의 이사장이 합류했다. 

“운동회가 7일이었는데 그 다음 날 밤에 쓴 것 같아. 9일 아침에 낙서를 발견했어.”

작업 상황을 보러 온 것인지 관리과의 한 선생님도 말을 거들었다. 

“낙서가 정말 심했어.” 라는 한 마디. “바로 비닐 시트로 감쌌어요.”


일주일 전인 12일에 학교에 갔을 때 교문의 일부가 파란 비닐 시트로 감싸 있는 걸 봤다. 그때는 운동회 때 교문을 덮었던 장식 대문을 철거할 때 교문이 상하지 않도록 씌운 덮개를 벗기는 걸 잊었나 싶어 그냥 지나쳤다. 

“간판을 통째로 바꾸는 것도 생각했지만, 신길웅 교장이 역사가 담긴 간판이라 해서 원상회복을 하기로 했어.” 

그러자 한 선생은 붓을 잠시 멈추고 “사실은 교문 간판의 이 글은…” 이라며 그 유래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평양호텔에 머물러 있을 때 호텔 옆의 문화회관에서 퇴직 후 여유를 즐기고 있던 서예의 달인에게 부탁해서 받은 글씨라는 거다.​2 

“일본어(한자)는 나보다 세 살인가 네 살 아래 젊은 분이 쓰고, 조선말은 다른 사람이… “ 

실물 크기로 쓴 것을 간판 위에 올려서 베껴 쓰고 글이 도드라지게 주변을 팠다고 한다. 

이사장은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교내에서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두 사람 다 “20년 이상 됐지.” 라고 말하면서도 정확한 연도는 기억하지 못했다. 


낙서가 칠해진 건 교문 우측의 일본 글(한자) 쪽이다. 바인더로 표면을 깎아서 그런지 조금은 검은색으로 퇴색했던 간판이 나뭇결도 선명하게 소생한 듯하다.

간판 사진이 「해방신문」에 실렸다는 기사는 ‘도립’에서 ‘자주 학교’로 이전한 1955년 4월 입학식 보도였다.​3  “입학생 940명을 맞아” “도쿄중고급학교 입학식” “550만 엔의 예산으로 교사 증축에도 착수”라는 타이틀이 붙여져 있다.

“ … 9월, 신입생 940명을 맞아, 전교생 2천261명, 선생 64명, 그리고 많은 학부형의 참가 하에 입학식을 거행했다. 이날 모든 학부형, 선생, 학생들은 여러 가지 곤란 속에서도 민족교육을 사수하고 공화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민이 될 것을 재차 다짐했다.” (1955년 4월 14일 자) 

사진에는 ‘「도쿄조선중고급학교」 - 새로운 간판을 보면서 (9월에 촬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때까지는 일본어로 「도쿄도립조선중학교」 「도쿄도립조선고등학교」로 쓰여 있었으나 ‘새로운 간판’에는 우리말로 「동경조선중ㆍ고급학교」로 쓰여 있다. 그게 언제부터 지금과 같이 「동경」이 「도쿄」가 되고 「중」과 「고」 사이의 「ㆍ」도 없어져 「도쿄조선중고급학교」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신길웅 교장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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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를 신길웅 교장에게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글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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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창립된 조선학교의 교명은 「東京朝鮮中学校」, 「西今里朝鮮中学校」, 「西播朝鮮中学校」처럼 일본의 지명을 사용해서 어떤 지역의 조선학교인지를 표시했습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요미가타(読み方)는 한자를 조선말로 발음했다. 「동경조선중학교 東京朝鮮中学校 」, 「서금리조선중학교 西今里朝鮮中学校」, 「서파조선중학교 西播朝鮮中学校」 같은 식으로 읽었다. 


해방 후 1950년대까지 재일조선인사회에서는 일본의 각 지명을 조선어 한자 읽기로 발음했다. “오사카 大阪에 간다”는 “대판에 간다”는 식이었다. 히로시마 広島는 ‘광도’, 시모노세키 下関는 ‘하관’…


그러나 1958년도부터 대부분 조선학교에서는 일본의 각 지명을 일본어 읽기 방식 그대로 표기하게 되었다. 1958년 3월 졸업한 도쿄 조고 8기생의 졸업 앨범에는 「동경조선고급학교 제8회 졸업기념」이었으나 제9기 졸업생 앨범에는 「도쿄조선고급학교 제9회 졸업기념」으로 되어있다.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의 교가도 현재 부르고 있는 ‘빛나는 그 이름 도쿄조선중학교’가 아니라 ‘동경조선학교’로 되어있었다. 


교명이 「도쿄조선중고급학교」이지만 1955년 4월에 도립에서 탈피해 자주 학교가 되었을 때 교육법상의 1조교가 아니라 각종학교로 인가되었다는 이유로 소ㆍ중ㆍ고교에 해당하는 교육단계를 초중고급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학교는 학교법인으로 경영하기 위해 각종학교가 되었지만, 조선학교 설립의 역사적 경위를 생각할 때 1조교에 준하는 처우가 요구된다. 따라서 「고교무상화」에서 배제된 것은 언어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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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고등학교를 병설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본학교 교명은 「테이쿄 중학교ㆍ고등학교」, 「유메이 중ㆍ고등학교」 등으로 「ㆍ」을 붙여 병설학교인 것을 표시하고 있다. 이러한 표기법으로 한다면 「도쿄조선중ㆍ고급학교」가 정확한 표기라고 할 수 있지만, 「ㆍ」을 생략한 경위는 알 수 없다. 

조선학교는 일본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6ㆍ3ㆍ3 제로 되어 있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1ㆍ5ㆍ3ㆍ3 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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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5년 10월 「민중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창간. 1946년 9월에 「해방신문」으로 개칭하고 1950년 8월에 폐간되었으나 1952년 5월에 「조선민보」로 복간했다. 1961년 「조선신보」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후의 「재일조선인연맹」의 기관지였으며 현재는 「재일조선인총연합」의 기관지다. (역주) 

2. 조선학교의 교원(교사)은 재직 중에도 연수를 위해 평양에 며칠 간 머물기도 한다. 그 때의 일을 말하는 듯하다. (역주)

3. 조선학교는 49년 일본정부와 GHQ로 인해 강제 폐쇄된 후 ‘공립’ 또는 ‘도립’ 조선인학교가 되었다. 일본 정부나 현, 시가 운영비 일체를 부담해 교과서를 일본 교과서로, 교원을 일본인 교사로 바꾸어 일본교육을 실시했다. 이 체제가 6년 동안 지속되었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1952년 4월) 후 미 점령기에서 벗어난 일본정부는 일방적으로 재일조선인의 일본국적을 파기하고 외국인으로 취급했다. 이후 53년 2월 일본은 문부성 통달을 통해 「일본학교에의 취학의무」를 취소했다. ‘도쿄도립조선인학교’의 정식 폐교는 1955년 3월 31일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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