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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52 <일본어>교과서의 역사(전편)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0-06-14 16:36 | 84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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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52 <일본어>교과서의 역사(전편)    (글 이상영) 

 

전환점이 된 77년도 개편

재일조선인에게 <외국어>이자 일상생활에서는 제1언어인 일본어는 조선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쳐 왔을까. 일본어 교과서 편찬의 역사를 2회에 걸쳐 알아본다. 전편에서는 1955년 총련 결성 후부터 일본어 교과서 편찬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이 된 77년도 개편까지 시기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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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일본어 교과서(1969~2003년도 개편) - 


60년대 말까지 일본의 교과서를 사용

총련 결성 후 조선학교에서 교과서 편찬사업은 크게 나눠 7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결성 직후인 55년부터 57년에 걸친 제1, 63~64년의 제2차 편찬까지 독자적으로 교과서를 편찬하는 역량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주로 53, 55년에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보내온 교과서를 학우서방에서 역각 출판(사본, 판본 등을 원본대로 활자화시켜 새롭게 출판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조국에는 재일조선인에게 맞춘 일본어 교과서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독자적인 교과서를 편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위와 같은 이유도 있었기에 편찬이 쉽지 않았다.

총련 결성 이듬해인 56년에는 일본어 교과서는 올해 편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의 출판사에서 발행한 교과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는 당시의 문서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사용되었던 일본어교과서는 초급부는 中教출판사의 <こくごのほん(국어책)>(1~2학년), <国語(국어책, 3~6학년) 중급부는 教育출판사의 <총합 중학국어> 고급부는 같은 教育출판사의 표준 고등국어(인용_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 중앙상임위원회 <교과서 사용에 관한 해설-주로 중고급학교에 대해>1956.3.2, 『조선학교의 교육사-탈식민지화를 향한 투쟁과 창조』(오영호 저, 아카시서점 2019))


위에서 인용한 책에 따르면 당시 일본어 과목은 ‘50음부터 시작해 6년간 상용한자를 모두 이해하고 현대문을 읽고 쓸 수 있는 정도로 교육한다(초급부), ‘현대 일본어를 해독하고 서술할 수 있도록 한다’(중급부), ‘현대문을 충분히 해독하고 약간의 고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급부)등이 목표였다.

일본어로 정서교육을 하지 않는다’ ‘일본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교육의 목적에 적합한 내용을 취사선택해 가르친다는 것이 공통방침이었다. 이때부터는 당시 일본어 과목이 외국어로서 위치를 강조했고, 읽기·쓰기·듣기·말하기 같은 기능적 측면의 육성만이 중요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독자적 편찬 교과서

그 후에도 일본의 교과서를 사용했는데 한편으로 독자적 교과서를 편찬하자는 움직임도 확대되어갔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것이 69년부터 사용한, 일본어 과목으로서는 처음인 독자적으로 편찬한 교과서였다. 명칭은 초급부 <일본말 공부>, ·고급부는 <일본어학습>.


‘69년 교과서편찬은 67~68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도쿄대학 졸업 후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교원으로 편찬사업에 종사한 송도헌 씨(84, 전 학우서방(學友書房) 부사장겸 편찬국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말한다. “초급부에서 대학까지 일본 각지의 담당교원 수 십 명이 주조(十条)역 인근에 있는 시설에서 합숙 등을 하며 집필 작업에 몰두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정열에 넘쳐 혼신을 다했다.”


‘69년 교과서는 조국의 텍스트를 번역해 옮겨 적은 텍스트가 중심이 되었다. 게재되어 있는 문장을 몇 가지 예로 들면 김일성 주석의 전기 <고향과 만경대>(4), 군사 독재정권시대의 한국의 소녀가 쓴 시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을까>(5), 재일조선인의 내력을 정리한 <우리들은 왜 일본에 살게 되었나>(6), 조선()의 소설 <영예(栄誉)>(2) 등이 있다. 여기에 추가로 <편지를 쓰다> <한자 배우는 법> <일본어의 품사> 등의 학습교재도 게재되었다. 후술한 것처럼 ‘69년 교과서77년도의 편찬을 통해 내용이 한 층 새로워졌는데, 그럼에도 일부 콘텐츠는 개편 후에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게재해 일본어 학습 텍스트로 쓰였다.

 

일본인 작가의 문장도 게재

‘69년 교과서76년까지 사용되었다. 처음 독자적으로 만들어 쓴 일본어 과목 교과서라는 의의는 컸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나오게 되었다. 송씨의 당시 메모에는 ‘69년 교과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 평가가 기록되어 있다.

조국의 문장을 번역한 것이 주를 이루고 대부분이 해설조라서 문체의 다양성이 충분히 보증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구어조의 문장과 일상생활에 가까운 내용을 충분히 넣지 못하고 외국어의 소양을 높이기에도 불충분한 점이 많다. 또 문장의 주제가 사회과목과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의 흥미를 감소시키고 있다.》

 

일본어 교과서 편찬역사에서 전환점이 된 것은 74~77년의 제3차 편찬이다. ‘69년 개편한 교과서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새로운 교과서가 77년도부터 도입되었다.

일본어 읽고 쓰기, 회화능력에 관한 풍부한 지식을 체득할 수 있는 교재를 도입해 문장의 주제와 문체도 다양화했다.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일본인 소설가, 시인, 평론가 80여 명의 작품이 전면적으로 도입해 그 비율이 중고급부 교과서의 60~85%를 차지했다. 도쿄 중고급학교에서 총련 중앙교육국으로 옮겨 73~78년까지 커리큘럼과 교과서 편찬 등 조선학교의 교육 내용에 관한 분야를 담당했던 송씨는 자신이 맡았던 77년도 개편의 포인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는 일본인 작가의 문장이 많이 도입된 것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작은 여우 곤(ごんぎつね, 니이미 난기츠, 4), 공기가 없어지는 날(空気がなくなる, 이와쿠라 마사지, 5), 인사(あいさつ, 츠보이 시게지, 6), 첼로 켜는 고슈(セロくゴーシュ, 미야자와 겐지, 1), 청병과 조롱박(清兵衛瓢箪, 시가 나오야, 1), 도련님(っちゃん, 나쓰메 소세키, 2), 학의 보은(夕鶴, 키노시타 준지, 3), 박수치지 않는 사내(拍手しない, 후지모리 세이키치, 1), 라쇼몽(羅生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2), 게 공선(蟹工船, 코바야시 타키지, 2) 등은 77년 개편된 교과서에 처음 게재되어 현재까지 사용되는 제7차 개편 교과서에도 계속 게재되고 있는 명작이다.

 

다양한 문체, 다양한 테마, 학생들의 흥미를 끄는 내용, 일본사회·일본인의 심리를 알기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을 수록했다.”(송씨)는 것이 작품 선정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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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교육에서 일본어 과목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일본어는 조선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제1언어이자 모어다. 같은 외국어교육이라도 일본어와 영어는 분명하게 목표가 다르다’(송씨) 그 독자성을 교육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과서 편찬에 힘써왔던 것이 각 학교의 담당교원과 학우서방의 스태프들이다. 다음 호에서는 80년대 이후의 편찬에 관해 편찬사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분투와 에피소드를 넣어 엮는다. 


* 월간 <이어> 2020년 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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