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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시리즈

발생기의 우리학교 vol.48 도쿄 제1초급학교 교사건설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19-12-26 16:50 | 57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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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의 우리학교 vol.48 도쿄 제1초급학교 건설  (글 전기일)

 

민족교육 사상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 교사건립에 내걸었던 1세의 심정

60년 전인 1959115, 도쿄 조선 제1초중급학교(당시는 초급학교)는 일본 각지의 조선학교들보다 먼저 민족교육 사상 처음으로 철근콘크리트 교사를 세웠다. 철근콘크리트 교사는 어떻게 세워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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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 신축교사 낙성식을 기뻐하는 아동들 - 

예산 2천만 엔, 동포들의 기부로

도쿄 제1초중급학교(도쿄도 아라카와구)의 출발점이 된 것은 조국해방 후인 19451215일에 재일본 조선인연맹 아라카와 사무소에 설립되었던 <국어강습소>이다. 그 후 46년에 <조련 아라카와 초등학원>으로 개칭하고, 47527일에는 현재의 도쿄 제1초중급학교가 위치한 도쿄도 아라카와구에 목조건물 교사를 건설했다. 52, 54, 55년에 교사 증축공사(목조)를 마치고 같은 해 <도쿄 조선제1초급학교>로 개칭한다.

당시 일본 각지의 26개 조선학교에서 55~58년 사이에 목조건물 교사, 기숙사, 강당 등의 건설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이 목조건물이었다. 또 당시 고양되어 간 귀국운동을 배경으로 민족교육을 희망하는 동포가 늘어나 각 학교의 아동수가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 학교가 협소해지자 동포들 사이에서는 좀 더 오랜 기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조선학교에 대한 요구가 높아져 갔다. 또 내구성 면에서 목조건물보다 튼튼한 철근콘크리트 교사건축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그러다 19574, 북에서 민족교육의 발전을 위해 제1차 교육원조비를 보내온 일에 고무되어 도쿄 제1초급학교의 관계자, 보호자들은 이해 719일에 <도쿄 제1초급학교 교사 개축 결기대회>를 열고 교사신축을 결기했다.(<조선민보> 1957725일자). 대회에는 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아동들에게 좀 더 나은 배움의 공간을 제공해주고자 200여 명의 동포들이 모였다고 한다.

대회에서는 학교이사회가 <교사 개축사업의 성공을 목표로>라는 보고 후 현존하는 4층 건물 목조교사에 더해 새로이 콘크리트 교사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철근콘크리트 교사 건설은 민족교육사상 처음 시도였다. 이 학교 이사회는 교사건축에 필요한 총 예산을 2천만 엔으로 설정. 교사개축 대표위원으로 량승호, 김요섭, 리준추, 리오달, 김병률 씨를 포함한 인사들이 40~100만 엔 단위로 기부할 것을 결의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총예산의 반액인 1천만 엔을 지역 동포들이 기부해서 조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학교 주변의 동포 거주지역인 아라카와 구에서 400만 엔, 도다이구에서 300만 엔의 기부금을 모을 것을 결정하고 보호자를 중심으로 <110엔 운동>이 전개되었다.(<조선민보> 725일자)

더욱이 당시의 2천만 엔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1,600만 엔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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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짜리 철근교사 전경(도쿄 제1초중학교 창립50주년 기념사진집에서) -  
  

동포들이 힘을 결집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된 것은 582월이었다. 교사개축 당시 이 학교 초급부 5학년이었던 량명원 씨(72)인근에 있는 일본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조선학교는 누더기 학교라고 놀림을 당했다. 목조건물 교사에서 지내는 겨울은 너무 추워서. 다 함께 오시쿠라만주 게임(원 안에 들어가 팔을 걸고 등이나 엉덩이를 이용해 안에서 바깥으로 밀어내는 게임)을 하면서 추위를 이겨냈죠.”라며 당시를 회상, “철근건물 교사건설이 결정되어서 기뻤어요. 교실에서 선생님이 등하교 중에 못을 발견하면 주워오라고 자주 말했죠. 주워온 못의 수를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라고 말한다.

업자뿐만 아니라 지역동포들이 모두 나서서 현장에 나와 건축을 도왔어요. 어르신들이나 상공인들이 정말 교육열이 높았어요.”라고 말하는 량씨. 한여름 작업장에는 보호자, 지역동포들이 땀을 흘리며 철재를 날랐고 어머니들이 쉬는 시간에 마실 음료나 밥을 준비했던 광경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동포들의 정열은 뜨거웠으나 신축교사 건설은 결코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도중에 청부업자가 행방불명이 되어 자금난에도 직면했다. 오랜 세월 도쿄 제1초중급학교 교육회에서 근무했던 옥정일 씨(71)당시는 총련, 민단 관계없이 아이들을 우리학교에 보내자는 인식 아래 자금을 서로 내고 힘을 모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59115, 조선학교로는 최초가 되는 철근콘크리트 교사가 완공되었다. 부지면적은 334평을 자랑하고 12개 교실과 부속시설을 갖추었다. 그 외에도 운동장 아스팔트 공사, 4층짜리 목조교사 수리, 수영장 수리 등이 이루어져 예산은 당소 설정액인 2천만 엔을 넘어 27백만 엔이라는 대규모로 늘어났다. 건설, 교내 수리에는 4,680명이 관여했다.(<조선민보> 120일자)

같은 날 <신축교사 낙성식 축전>이 이 학교에서 거행되었다. 기념식전의 모습을 보도한 <조선민보>(120일자)는 새 교사를 도내의 관공립학교는 물론 일본의 사립소학교를 포함해도 이렇게 까지 근대식으로 지은 훌륭한 교사는 좀처럼 볼 수 없다.’고 칭찬했다.

웅대한 교사를 배경으로 운동장이 아동, 보호자, 지역동포들로 가득 메워져 축제 같았다.”고 기념식전을 떠올리는 량씨. 기념식전에서는 아동들과 <조선중앙예술단>(금강산가극단의 전신)이 예술 공연을 펼쳤다고 한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동포들이 이렇게 까지 해주는 것인가 하고 감격해서 가슴이 벅찼다.”(량씨)

도쿄 제1초급학교는 신축교사 낙성과 더불어 같은 해 4월에 중급부를 병설, 현재의 <도쿄 조선 제1초중급학교>로 개청했다. 앞서 말한 량씨는 중급부 1기생, 옥씨는 3기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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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근 신축교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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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축교사 건설 위원들 - 
 

 

이후 철근콘크리트 교사가 주류

이 학교의 철근콘크리트 교사 건설 후 같은 해 6월에 조선대학교(도쿄도 오다이라시)4층짜리 교사로 건설되었다.

1960년대에는 초급부 1천 명, 중급부 5백 명으로 50년대에 비해 아동·학생 수가 증가한 도쿄 제1초급에는 619월에 철근 4층짜리 교사를 새로이 건설. 3, 4층의 철근교사 두 개 동이 나란히 세워졌다. 또 일본 각지의 조선학교에는 58년도부터 68년도 11월 사이에 급증한 아동 ·학생 수에 대응해 매월 평균 1.3개교가 생겨나 조선학교 교사 등이 신·개축되어 간다. 그 숫자는 11년 사이에 151개교에 이르고 목조건물이 70, 철근건물이 81개로 철근건물이 목조건물을 웃돌았다. 도쿄 제1초급의 철근교사 건설을 시작으로 각지의 조선학교에서 철근교사 건설이 주류가 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68년 이후의 조선학교는 모두 철근콘크리트로 신·증축되었다.

량씨, 옥씨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당시 신축교사 건설에 분주히 나섰던 동포들의 모습이다. 량씨는 “1세 어르신들은 학교에서 배우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1세의 민족교육에 대한 뜨거운 염원 덕분으로 훌륭한 학교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1세의 의지는 92년 교사개축, 운동장에 인공잔디 설치(2006, 일본각지의 조선초중급학교로는 최초), 2013년 신축교사 건설로 후배들에게 맥을 이어 계승되고 있다. 민족교육을 둘러싼 환경이 엄혹한 지금이야말로 1세가 쌓아온 것을 되돌아보는 일이 중요하다.”(량씨)



* 월간 <이어> 201910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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