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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밝혀라…일본 내에서도 커지는 목소리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2-02-04 23:33 | 25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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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밝혀라…일본 내에서도 커지는 목소리 

입력 2022-02-03 17:56 수정 2022-02-04 09:33 


조세이탄광 수몰 80년, 희생된 136명의 조선인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광산을 일본 정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면서 일본 내에서도 '역사 왜곡'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문화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낸 마이니치 신문에 이어, 이번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조세이 탄광'에서 희생된 조선인을 추모하는 시민단체 대표가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역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노우에 대표와 오늘(3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장생탄광, 희생된 136명은 찬 바다에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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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 입구는 어디에 (우베[일본 야마구치]=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조선인 136명이 바다 밑에 생매장된 조세이(長生)탄광 수몰사고 80년을 하루 앞두고 지난 2일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 있는 옛 조세이탄광 합숙소 인근에서 '조세이탄광 물비상(水非常·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 설치한 안내판을 이노우에 요코 모임 공동대표(왼쪽)가 가리키고 있다. 안내판에는 조세이탄광과 비슷한 규모의 광산 갱구 사진이 부착돼 있다.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안내판 옆에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갱구의 흔적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사진 연합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코(72) 공동대표는 "강제동원 역사를 일본 정부가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선인이 강제동원된 사실이 없다,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날은 조세이탄광, 우리에게 '장생탄광'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서 수몰사고가 일어난지 8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조세이탄광은 야마구치현에서도 조선인 노동자가 많았던 곳으로 꼽힙니다. 조선인이 많아서 '조선탄광'이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1942년 2월3일 오전 6시경, 해안 갱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해저탄광에서 일하던 노동자 183명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 136명이 포함되었는데, 현지인들에게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채 잊혀졌습니다. 지금은 바다 위에 과거 이곳에 탄광이 있었던 것을 알리는 콘크리트 환기구 2개만이 남아있습니다.


이노우에 요코 대표는 강제동원 조선인 수몰자를 기리는 추도식을 이날도 열었습니다. 정식 추도식은 오는 12일 열리지만, 함께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수몰사고에 희생된 넋을 기렸다고 했습니다. 이노우에 대표는 "수몰사고로 사망한 희생자 136명의 유골이 아직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이하는 대표와의 문답입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데.

"수몰자 유골은 전체 183명으로, 이 중 136명의 조선인 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정부는 강제노동, 강제동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유골발굴 과정을 통해서 정말 이런 일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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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 합숙소 건물 (우베[일본 야마구치]=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조세이(長生)탄광 수몰사고 80년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일본 야마구치(山口)현 우베(宇部)시에서 재일 교포 서정길(80) 씨가 일제 강점기에 조세이탄광의 합숙소로 사용된 건물을 가리키고 있다. 사진 연합 


강제동원했다는 근거나 자료가 없다고도 주장합니다만.

"조세이탄광 강제노동, 강제동원은 회사가 제출한 자료에 있습니다. 석탄 선별하는 곳, 선단 등을 알리기 위해 만든 지도가 있는데, 거기에 확실히 합숙소라고, 사각형으로 된 것이 있습니다. 사택도 따로 있고요. 사택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곳인데, 합숙소는 3미터가 넘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도망갈 수도 없도록 했어요. 조세이탄광 노동자의 80%가 조선인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조선탄광이라고 할 정도로요. 위험하니 일본인은 못하고, 1939년부터 모집이라는 형태로 1258명을 합숙소에 모아 노동을 하게 했습니다. 회사 자료에도 번호가 적혀있는데요, 생존자들 증언에 따르면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렸다고 합니다. 이름에 번호가 적혀있고요. 모집이었다면 그만두겠다고 하면 되는데, 방식만 모집이었던 겁니다. 생존자들의 증언도 있는데 일본이 이것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뭐가 되겠습니까. 군함도, 사도광산, 전국에서 (강제동원으로) 사망한 사람들고 그렇고, 확고한 증거라는 것을 내놓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이 그런 것을 태워버리기도 했으니 증거를 발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추천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사도광산 관련해선, 사도시민들에겐 관광 등 고려하면 반길 일이지만, 군함도처럼군함도 경우도 강제노동 역사가 일절 언급되지 않은 채 세계유산이 되는 셈인데,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것을 일본 정부는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군함도 세계유산 등록) 몇 년 뒤에서야 정보센터라는 것을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거기엔 강제노역이라든가, 전혀 전시하지 않았지요. 사견입니다만, 일본이 군함도에 대해 유네스코의 지도(강제동원 사실을 알리라는 )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도광산에 대해 세계유산 추천 신청을 했지만 등재는 어려운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인 절반 이상이 사도광산 추천에 찬성한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만.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침략, 식민지 정책 등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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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홈페이지 갈무리. 사진에 보이는 두개의 콘크리트 구조물은 해저탄광이던 당시의 환기구. 사진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조세이탄광과 관련한 시민운동은 어떤 계기로 참여를.
"제가 1950년생인데, 소학교 시절 댐 건설이 있었습니다. 친구 중에는 재일동포도 있었고요. 그런데 댐 건설에 동원된 사람들이 조선인, 중국인들이었어요. 그걸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91년 모임 창립 때부터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올해가 수몰사고 8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달 12일에 열리는 정식 추도식도 있고, 유골발굴과 반환을 향해서 한걸음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전국적으로 유골발굴 등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고요, 힘을 모아서 유골발굴과 반환을 향해 뜻을 모으려고 합니다. 한국의 시민, 그리고 일본의 시민들이 하나가 되어 이 (조세이탄광) 문제를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예 / 국제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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