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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몽당연필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19-05-03 17:07 | 19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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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몽당연필 하나도 귀하던 시절. 닳아가는 연필심에 침 발라가며 글을 썼다. 다 쓴 볼펜 몸통에 몽당연필을 끼워서 썼다. 하나의 연필이 손에 잡기 힘든 짤막한 몽당이 될 때까지 연필심은 얼마나 온 힘으로 연마했을까. 몽당연필은 그렇게 한 시대의 쓸모이기도 했다. 요즘 한국 사회에 또 다른 존재감을 알리는 몽당연필이 있다.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이름 그대로다. 재일본 조선학교를 응원하고 한국 사회에 조선학교의 존재를 알리는 일을 한다. 그로 인해 ‘평화와 통일 그리고 인권’ 그 연대의 길로 나아가려 한다는 뜻을 품은 시민단체다. 많이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70여 년 긴 세월, 일본 땅에서 학교를 세우고 지켜온 역사에 대한 올바른 화답이라고 생각한다는 권해효 대표의 말이다.

4·24 한신교육투쟁을 아십니까

수년 전, 겨우 조선학교 아이들의 수업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학교 정문 시계탑 아래 작은 돌하르방 2기가 지키고 있었다. 초급학교 아이들이 티 없는 웃음으로 크게 인사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마침 우리 해방 정국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었다. 농구하는 고교생들한테 조부모의 고향을 물었다. 제주, 경상도, 전라도 등 남쪽 지역 출신이 대부분이었음을 기억한다. 그때 만난 교사는 무엇보다 조선학교를 바라보는 남쪽의 편견과 오해가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그들은 남과 북을 알고 있는 존재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남의 땅에서 차별을 체험한 세대다.

해서 이들 재일의 숲은 식민지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 학교’를 나온 어떤 이는 말한다. 적어도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 서 있는 인간인지를 안다고. 그럼에도, 불행했던 시대를 산 재일 운명의 무게를 지금도 조선학교 아이들은 감당하고 있다. 여전한 차별 속에 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일본 정부의 고교 무상화 정책에 조선학교만 배제됐기 때문이다.

이 땅의 화사 찬란한 4월은 노랗게 서러운 달이고, 눈물의 달이다. 71년 전, 제주4·3이 일어나던 그해,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저 일본 땅에서는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뜨거운 투쟁이 있었다. 1948년 당시 일본에서 조선말과 조선글을 가르치던 조선학교를 폐쇄하려던 연합국 최고사령부에 맞서 일본 전역에 민족교육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다. 수천 명이 수난을 당하고, 열여섯 살 제주 출신 김태일 소년은 그 투쟁의 자리에서 경찰의 총을 맞고 희생당했다. 눈물겨운 싸움 끝에 투쟁은 마침내 승리한다.

100년이 넘는 재일 역사 속에 우리말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이 ‘4·24 한신교육투쟁’을 재일 사학자들은 우리말 지키기 원년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다. 이 역사가 어디 남의 이야긴가. 우리 역사 교과서에도 반드시 실려야 할 역사이며,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날 아닌가. 늦었으나, 분단의 모순을 산 재일의 마음을 이제 이해할 때가 되었다.


무엇이든 경험해본 자가 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교는 살아날 겁니다. 여러분 봤죠? 촛불 하나로 나라를 확 바꿔버렸다 아닙니까. 그러니 학부모나 학생들은 절대 좌절하지 마세요.” 김복동 할머니. 생전 마지막 조선학교 방문길에서 있는 힘을 다해 용기를 준 이 감동의 발언이 쟁쟁하다. 그의 희망처럼 생전에도 사후에도 조선학교 아이들을 위한 기부는 십시일반 이어지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일본 땅에서 우리말을 공부하는 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접합되어 결국은 미래로 흘러갈 것을. 무엇이든 잃어본 자가 안다. 무엇이 소중한지를. 그리고 조건 없이 기부해본 자가 안다. 타인의 슬픔에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믿고 싶다. 지금은 몽당연필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쓸모의 시대를 살고 있는 거라고.

허영선 시인



출처 -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69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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