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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의 동포 이야기

대구FC 윤종태 선수 / 좌절을 이겨낸 축구 인생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1-10-02 20:23 | 165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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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FC 윤종태 선수, 좌절을 이겨낸 축구 인생. 무작정 조국에서의 꿈을 쫓아라! 】


2021년, 수습될 것만 같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여전히 계속되면서 스포츠계에도 만만찮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전에 재일동포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이 날아왔다. 


도쿄올림픽에서 유도78킬로 안창림 선수가 보란듯이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필자도 한국생활을 하는 가운데 이렇게 가슴이 뜨거웠던 적이 없었을 정도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스포츠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도 했다. 


재일동포 축구계의 역사 또한, 면면히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조국을 위해 축구 등 여러 스포츠를 통한 교류를 해 왔던 재일동포 1세, 2세들이 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재일동포 스포츠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K리그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안병준 선수(K2 부산 아이파크 소속)는 도쿄조선고급학교 출신으로 이번 시즌에 21골, 4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중심선수로 팀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또 한명 K1리그 대구FC에서 뛰는 윤종태 선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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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몽당연필에서 소개한 바 있는 윤종태 선수는 2019년에 대학 재학중에 대구 FC에 입단했다. 일본대학에서 중간과정 없이 K1리그에 직접 입단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인 그였지만, 입단 1년째인 작년에는 R리그(예비리그_역자주)에서 1년간 지냈다. 환경도 많이 변했고 자신의 특색을 발휘하지 못하며 출장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하는 힘든 K리그 첫해를 보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심기일전한 2020년, 중국 전지훈련에서 무기인 드리블로 코치진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결국 1군에 합류했고 2시합의 후보출전을 거쳐 K리그 명문 포항스틸러스 전과 최종전이었던 전북현대 전에 선발 출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대에 충만한 이번 시즌. 

ACL아시아챔피언십 (국제축구연맹이 주관하고 아시아 축구연맹이 주최하는 프로축구 경기. 아시아프로축구의 최고 권위가 있는 대회)의 출전권을 딴 대구 FC는 한국국가대표 이근호 선수가 복귀하여 전력을 강화했다. 


3년차 윤종태 선수는 2021년 시즌에 스타팅 맴버까지는 아니었지만 전지훈련에서 눈에 띄어 개막전 멤버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속 주전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슈퍼 후보선수로 기대를 모았으나 불행히도 부상이 겹치며 이번 시즌에 출장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와 계속 연락을 취해왔던 필자는 긍정적인 그의 발언을 들으며 반드시 기회를 잡으리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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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축구인생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재일동포 3세로 고베에서 태어나 자란 윤종태는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친척의 영향으로 축구에 빠져 매일같이 친척 집에서 사촌들과 연습하며 그야말로 축구 소년이 되어갔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일본학교를 다녔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후보 선수로 지냈고 자신이 가진 장기를 발휘했으나 슈퍼 후보 선수라는 역할에 그쳤고 선발 출전의 기회는 적었다.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리그의 강호 환태평양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2학년까지는 스타팅 멤버였지만 자신의 장기인 드리블과 팀의 전술이 맞이 않아 선발 출전의 기회가 잘 오지 않아 성적을 남기지 못하고 좌절과 갈등을 반복했다. 


이런 경우 취직활동을 시작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그는 프로축구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의 꿈과 의견을 처음부터 존중해 주었고 뒤에서 묵묵히 밀어 주었다. 그런 가족의 정신적인 지지와 함께 그는 프로가 되겠다는 꿈에 대해서는 1미리도 흔들리지 않고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자신의 무기를 갈고 닦으며 기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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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윤종태에서 J리그가 아닌 K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목표가 생긴 계기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재일한국 대표로 참가한 전국체전이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작년에는 중지되었고 올해도 재외동포가 참가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한국에서 매년 개최되는 전국체전이었다. 이 대회에는 재외국민부가 있어서 전세계에 사는 재외한국인의 대회도 동시에 개최된다 


대학 1학년 때에 친척의 권유로 이 대회에 참가했던 윤종태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며 같은 입장의 재일동포 동료 선수들, 스텝, 관계자들과 함께 한 1주일의 조국생활은 대단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과 조부모님은 그에게 “조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라”며 조국의 이야기나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주 이야기해주었다. 한국 가요를 들으며 우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았고 그분들의 조국 사랑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대회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같은 입장의 동포들과 조국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프로축구 선수가 된다면 “나의 조국인 한국에서”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대회에서 그의 활약을 본 한국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대학 재학 중에 연습 선수로 참가하는 기회를 잡았고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아 대구 FC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재일동포 3세 윤종태 선수는 일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우리말를 배우거나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민족학교에 다니지 않은 아이들의 대부분은 조국의 말을 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일본학교를 다닌 그도 대구에 입단했던 초기에 한국말을 전혀 할 수 없어서 먼저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한글을 겨우 읽는 수준이었으니 소통하기가 어려울 거라 짐작하고 조금 거리를 두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합숙소의 휴게실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모두 모여서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그렇게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한국 선수들은 굉장히 솔직합니다. 담아두는 게 없어요.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기도 했는데 익숙해지니까 정말 편해요. 모두 저를 걱정해 줍니다. (^^) 지금은 서로 장난도 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어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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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작년 시즌 힘든 기억도 많지만 10/25일 포항스틸러스 전의 일이었다. 윤종태는 드디어 선발로 그라운드에 설 수 있었다. “역시 입장하기 전에는 엄청 긴장했어요. 솔직히 말해서 제가 K1 무대에 스타팅 멤버로 뛸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긴장해서 머리속이 하얗게 탈 거 같았어요. 그래도 언제나 저를 눈물로 응원해 주는 가족, 친척들, 그리고 제가 뛰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지만 3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천국에서 이런 저를 눈물로 지켜주고 계실거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힘이 났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가족 덕분입니다. 틀림없습니다. 감사의 말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힘을 주는 가족입니다. 이제 겨우 스타트 라인에 섰을 뿐이지만 지금까지 지지해준 가족들의 얼굴이 떠 올라 감개무량합니다.”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한국에 건너 온 윤종태 선수. 앞으로 K리그에 일본에서 직접 입단하는 윤종태 같은 경우가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윤종태 선수도 2018년에 개정된 재외국민 병역법에 의해 조국에서의 선수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 재일동포 스포츠계에 이 법률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K리그 생활이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활약을 지켜봐 주시길 강하게 기대한다. 많은 응원이야말로 그의 활약에 보탬이 된다. 필자의 바람이기도 하다. 


윤종태 선수를 응원해주세요. 

인스타그램 아이디 jongtae.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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