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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의 동포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 새로운 도전과 자아 찾기를 위해 (장재륙)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1-05-26 18:45 | 34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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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과 자아 찾기를 위해

건국대학 2학년 장재륙 이야기


젊었을 때 태어나 자란 나라를 떠나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배우는 소중한 인생 경험이 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젊음으로 인해 흡수가 빠른 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려서 부모 곁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생이 만만치 않다. 더욱이 고교 졸업 후에 곧바로 부모 곁을 떠나고 나라를 떠나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힘들뿐 아니라 생활적으로도 맞지 않아 머지 않아 귀국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번에 인터뷰에 응해 준 장재륙 군은 고교를 졸업한 직후 단신으로 유학을 결심해 한국에 건너 온 2001년 생 청년이다. 


재일동포 2세인 아버지와 3세인 어머니를 둔 그는 어머니가 일본국적이었기 때문에 자신도 일본 국적을 소유하고 있지만 뿌리는 조선반도(한반도) 경상북도에 두고 있는 재일동포이다.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에서 태어난 그는 일본 유치원을 졸업한 후 민족교육을 배우기 위해 우리학교(조선학교)에 진학한다. 요코하마 조선초급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 6년을 보내 후 중학교, 고교도 민족학교인 가나가와 조선중고급학교에 진학한다. 우리말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배우며 동무들과 학교 생활을 보낸 한편, 축구부에도 소속되어 동료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청춘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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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그는 고교 졸업 후 다음 진로로 여러 선택지를 찾아 고민한다. 


처음에는 조선대학교 진학을 고려했으나 당시의 정세도 있었고 재일동포 사회에서 한발 떨어져 다른 시점으로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 새로운 사회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을 품게 되었다. 조선대학교에 진학할까,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할까 고민하던 그는, 취직을 한다고 해도 우리말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실력을 겸비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한국의 어학원으로 유학을 결심한다. 


이렇게 한국에 건너 오기로 결심한 장재륙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여행으로는 몇번인가 와 본 경험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두 따뜻하고 정이 깊다는 이미지를 받았다. 


건국대학 소속의 어학당에 입학한 그는 우리학교에서 배운 우리말 덕분에 위에서 두번 째인 5급에서부터 시작했다. (한국의 대학 어학당의 대부분은 1급인 초급에서 시작해 6급까지가 정규 과정이다)


민족학교에서 우리말을 배웠기 때문에 어학당 생활은 불편함 없이 순조로웠으나 역시 민족학교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그 단어의 뉘앙스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그것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고, 발음에서도 차이가 나는 등 12년간 우리학교에서 사용한 언어가 좀처럼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고생도 했다. 그러나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수학하며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충실한 생활을 보내며 무사히 어학당을 졸업했다. 


이때 쯤에 그에게 하나의 생각이 떠 오른다. 


처음에는 한국어를 배워 귀국하려고 했지만 이대로 일본에 돌아가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여 여러 각도에서 일본 사회, 한국 사회, 그리고 재일동포 사회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건국대학 부속 어학당 졸업자라는 인연도 있어 건국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아직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낮고 이것은 대학 측도 마찬가지다. 조선학교 졸업 증명서로는 입학 신청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학 측의 통보가 온 것이다. 한국 대학을 포기해야만 하는 절망에 빠진 그는 모교인 가나가와 조선학교의 선생님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선생님이 건국대학 측에 조선학교가 어떤 학교이며 어떤 경위로 세워진 학교인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한반도에 뿌리를 둔 재일동포의 유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존중해 주면 좋겠다, 학업으로 차별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민원을 직접 넣었다고 한다. 결국 학교 측도 이해를 해 줘서 어떻게든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게 되었고, 무사히 건국대학 입학시험에 합격. 한국 생활에서의 다음 단계를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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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가 우리학교에서 배울 때에도 그는 재일동포 사회가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 의식이 굉장히 높은 조선학교이지만 사춘기 때는 그에 반하는 행동도 하면서 스스로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에게 자문자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오니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 우리학교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지켜져 왔는지가 일본을 떠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선조들과 선배들의 공적이나 재일동포 사회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자신도 다음 세대 후배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는 첫 경험 투성이었다. 첫 자취 생활, 더욱이 타국 생활이기도 해서 가사와 학업의 병행도 어렵고, 말도 100퍼센트 이해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받았다고 한다. 또 고교 시절에 학업을 다소 소홀히 했기 때문인지 공부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여러 면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난감했던 때가 많다. 하지만 부모, 친구, 신뢰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담해 학교를 포기하지 않고 졸업까지 어떻게든 견뎌 보자고 결심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국에서의 노력을 결심한데는 이유가 있다. 2년 전 12월에 울산에서 열린 한일 축구 페스티발에서 일본 중학생 팀의 통역을 맡아 일할 기회가 있었다. 첫 통역 일이었다. 그에게는 원래부터 한일 축구 관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으나 이렇게 스포츠를 통해 태어나 자란 나라와 고향 나라의 아이들이 교류를 하고 그 교류에 자신이 관계할 수 있었던 것이 가슴에 깊이 남았다고 한다. 


일단 이번 학기가 마치면 대학을 휴학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생각해 자격증 취득 등의 준비를 시작한다고 말한다. 아직 긴 인생, 여러가지 경험 속에서 꿈을 향해 달리는 장재륙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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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원 문 -------------------

‐新しい挑戦と自分探しの為に‐
建国大学2年生 張在陸

若いときに、自分の生まれ住んだ国を出て、他の国で生活をするというのは語学やその国の文化を学ぶ人生経験になり、吸収が早い。しかしその反面、若いときに親元を離れ、ましてや他の国で働くということは精神的にも肉体的にも苦労が多くなる。ましてや高校卒業後すぐに親元を離れ、生まれ住んだ国を離れるとなると、気持ち的にもモチベーションを維持するのがとても難しく、生活が合わないですぐに帰国してしまうケースも少なくない。

今回インタビューさせていただいた、張在陸君は、2001年生まれの若い青年であり高校を卒業後、単身留学を決意し韓国に渡ってきた青年である。

在日2世の父と在日3世の母の元で生まれた彼は、母が日本国籍に帰化をされたために日本国籍所持者だが、ルーツを朝鮮半島の慶尚北道にもつ在日同胞である。

日本の神奈川県横浜市で生まれた彼は、日本の幼稚園を卒園すると、民族教育を学ぶためにウリハッキョ(朝鮮学校)に進学する。横浜朝鮮初級学校に入学し小学校生活6年間を過ごすと、中学校、高校も民族学校の神奈川朝鮮中高級学校へと進学した。ウリマルとウリナラの歴史を学び、トンム達と学校生活を送る学校生活の傍ら、サッカー部にも所属し、仲間と一緒にグランドで汗を共に流しながら、青春時代を過ごした。

こうして、民族学校で学生生活を過ごした彼だったが、高校を卒業後の次の進路選択で、いろいろな選択肢を模索し悩んだ。

最初は民族系学校の朝鮮大学への進学を考えていたが、その当時の情勢、また在日社会から一歩外に出て違う視点や考え、新しい社会を見てみたいという思いを抱くようになる。朝鮮大学か高校卒業と同時に就職をするか、迷った彼だったが、就職をするにあたっても、ウリマルを専門的に学び、力をつけてからでも遅くないと考え、一旦韓国に語学留学を決心する。こうして、韓国に渡ることを決意した彼は、海を渡り新しい生活を始めることとなった。

旅行では、何度か来たことがあり韓国の人達はみんな温かく、情が厚いイメージを受けたと話してくれた。

建国大学付属の語学堂に入学した彼は、ウリハッキョでウリマルに触れていたため上から2番目の5級からのスタートとなった。(韓国の大学付属の語学堂の大部分は、1級を初級とし、6級までが正規過程である)
民族学校でウリマルに触れていたため、語学学校生活は不自由なく順調に過ごすことができたが、やはり民族学校で使用する単語やニュアンスと韓国で使う単語で若干の差や発音の違いなどで12年間学校で使用していった言語がなかなか通じないケースなどがあり苦しんだこともあったという。
そうした苦労はあったが、いろいろな国の友人と韓国語を学び、日本では経験のできない充実した生活を過ごし、無事に語学堂を卒業する。

ここで彼に一つの思いが生まれる。
最初は、語学を学び帰国しようと考えていたが、このまま日本に帰国するよりも韓国で大学に進学し、いろんな角度から日本社会、韓国社会、また在日社会をみたいという思いが生まれる。

 こうして、建国大学の付属語学学校に通っていたということもあり、建国大学に進学をするために準備を始めた彼だったがここで大きな壁にぶつかることになる。

韓国国内ではまだ朝鮮学校の認識は大変低く、大学側も把握ができない、韓国では許可が認められていないために朝鮮学校の卒業証明書では出願が認められないと大学側から通達を受けてしまう。
こうして、韓国での大学を諦めざる負えないのかと頭が真っ白になった彼は、神奈川朝鮮学校の先生にこのようになってしまったと、連絡を入れることにした。

そうすると、先生が建国大学に朝鮮学校がどういった学校で、どのような経緯で建てられた学校なのかを細かく説明をし、朝鮮半島にルーツがある在日同胞が留学を通して、勉強したい気持ちを尊重してほしい、学業で差別をしないでほしいと直接問い合わせてもらい、学校側に理解をしてもらい何とか出願が可能になった。
こうして、無事に建国大学を受験し無事に合格。次のステップの韓国生活がスタートをきるのであった。

元々、ウリハッキョに通っている時も彼自身、在日社会についてとても居心地がよかったわけではないと話してくれた。ウリは一つという共同体意識が非常に高い組織である朝鮮学校であるが、思春期を迎え、あえて逆の行動をとったりし自分の何かに自問自答をしていた。
しかしいざ韓国にくると、先祖たちがどうやって生きてきたか、ウリハッキョがどの様に守られて来たのか、日本を離れてみて見えた部分があったという。
先祖の方々、先輩たちがしてきた功績や在日社会を守るための行動を自分も下の世代の後輩たちに伝えていけるように進みたいと気持ちの変化があったという。

韓国にきて、初めてのことだらけだった。初めての一人暮らし、ましてや海外での生活ともあり、家事と学業との両立が難しく、言葉も完全に100パーセント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ためストレスを非常に受けてしまう。また、高校時に学業を多少疎かにしてしまったため勉強も難しく、何をしたらいいか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う。親、友人、信頼している周りの人達に相談をし、学校は辞めずに卒業まで何とか、頑張ってみようと決心する。

 彼がそこまでして、韓国で頑張ってみようという理由には訳がある。
元々、日韓のサッカー関係につきたいと夢があったのだが、2年前の12月に蔚山市で開催された、日韓サッカー交流フェスティバルに、日本の中学生チームの通訳として参加した。はじめての通訳の仕事だったが、サッカー、スポーツを通して。生まれ育った国と故郷の国の子供達が交流をし、それに携わったことがとても胸に深く残ったと話してくれた。

一旦今学期を終えると、大学を休学してこれからのことを考え資格取得などの準備をはじめると話してくれた。まだまだ長い人生、いろいろな経験をし、夢に向かって走る彼を応援し続けていきたいと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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