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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의 동포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 재일동포와 한국사회의 가교가 되기 위해 (김우향)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1-04-15 17:49 | 1,730 | 0

본문

재일동포와 한국사회의 가교가 되기 위해

- 재일동포 4세 김우향 –

재일동포는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잉태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한반도 분단 등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태어난 재외동포는 그 정체성의 확립, 혼란, 갈등을 뚫고 역사에서 살아남은 존재이다. 


김우향은 오사카부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우리학교(조선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센슈(泉州)조선초급학교 부속유치원, 센슈조선초급학교,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 다녔다.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재일동포 4세다. 조부모, 부모님도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이다. 이른바 ‘자이니치’ 在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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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축구부 매니저 시절 오사카 조고 축구부와 함께. 가운데 흰 티셔츠.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다닐 때는 축구부 매니저를 담당했다. 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겨울에 열리는 고등학교체육연맹 주최의 가장 큰 대회)에서 전국 8강에 진출한 적이 있는 ‘우리학교 축구 명문’인 오사카 조고 축구부에서 스태프로 선수들과 함께 청춘을 보냈다. 


청춘시절에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 스태프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 그녀는 졸업 후 의료 쪽 전문지식을 얻기 위해 간사이의료대학으로 진로를 결정했다. 


처음으로 일본학교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녀였지만 태생적인 밝음과 사교성으로 좋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보건의료학을 전공하며 충실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그렇게 꿈꾸었던 ‘스포츠 선수의 후방에서 지원하는 일’을 위해 노력하던 중 드디어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꿈을 향한 일보 전진이었다.


한편 어떤 다른 생각이 그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학교’에서 청춘을 보내고 선수들과 함께 우리 민족으로서 스포츠에 관계해 온 그녀는 

“우리말을 통해 의료와 스포츠 분야에서 활약하고 싶다.” 

는 소망을 조금씩 품게 된 것이다.  


소망은 날이 갈수록 커졌지만 부모님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딸을 혼자 해외로 보낸다는 건 부모로서 상당한 결단을 요구한다. 게다가 지금 한국으로 간다면 어렵게 딴 국가자격증이 허사가 될 뿐이니 먼저 일본에서 경험을 쌓으라는 당부도 있었다. 결국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생활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기 위해 대학 졸업 후에는 일단 일본의 의료 분야에서 일하기로 했다. 


의료현장에서 일하면서 착실히 준비해 나가던 그녀는 휴가를 이용해 틈틈이 한국에 건너가 의료 분야나 스포츠 분야의 통역 양성 전문학교를 견학하고 한국에서의 생활 분위기를 면밀히 조사했다. 


이렇게 해서 2018년 3월. 

드디어 마음으로만 품었던 ‘고향’으로 건너가 꿈의 실현을 위한 삶을 시작한 그녀는 우선 의료 통역 공부를 위해 한일 의료통역 양성과정을 수강했다. 거기서 통역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반년 동안 확실히 배운 후 서울역 소재 미용 피부과 의료통역으로 1년 3개월간 근무하고, 2019년 3월에는 일본 축구 유학을 준비하는 고교생들의 일본어 레슨으로 1개월간 오사카로 귀국한다. 


이어서 그 업무가 끝난 다음 날에 수원 도시공사 여자축구단의 오사카 원정에 동행하여 통역 겸 매니저로 선수들을 후방에서 지원했다. 이때 능력을 높게 평가받아 4월부터 팀 내 일본인 선수의 통역으로 정식 임명되어 수원 도시공사 여자축구팀의 정식 스태프가 되었다. 마침내 스포츠 세계에서도 그녀의 커리어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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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수원도시공사 여자축구부와 함께. 사진 오른쪽에서 세번째. 



순조롭게 보이는 그녀의 행보였지만 그녀 자신은 다양한 갈등과 싸우면서 한국 생활을 보냈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의 정체성은 다종다양하며 상당히 복잡하기도 하다.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그들은 이곳을 조국으로 여기며 한국에서 자신을 당연히 받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한 민족으로서 손을 내밀어 따듯하게 품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재일동포’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를 점한다.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아니라고 차별받았으며, 한국에 와서는 일본인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다는 불안이 컸다.


실제로 한국에 건너와서 아픈 경험을 겪기도 했지만 계속 생활하는 동안 이해해 주고 따듯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의 존재가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불안보다는 감사의 마음을 더 가지게 되었다. 


갈등과 도전을 반복하면서도 멋진 인연이 생겨 2020년에 결혼을 했다. 

그와는 통역 일을 하는 동료의 소개로 만났는데 재일동포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한다. 그 스스로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그녀의 친구, 친척들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지금은 우리학교에서 부르는 노래도 부를 정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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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녀의 한마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외롭고 힘들었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열심히 했죠. 그러다 가끔 일본에 돌아가면 우리학교 동무들과 재일동포 사회의 따듯한 환경을 일본에 살 때 보다 더 깊이 느꼈어요. 제가 한국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응원해 주셨어요. 어렵게 만들어진 이 재일동포의 공동체를 지키고 싶다고 절실히 느꼈어요. 저는 저의 위치에서 ‘언어’를 이용해 사람들끼리의 ‘가교’가 되고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 자라 한국에 사는 재일 코리안으로서 존재가치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일동포 5세, 6세로 이어질 우리의 존재를 선대를 본 받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이 3세, 4세의 사명이라고 필자는 깊이 느꼈다. 한국에 거주하는 재일 코리안의 역할 또한 클 것이라 믿는다. 


김우향 씨의 더욱더 멋진 활약을 기대한다.

                                                                                                                                                        번역 : 김명준


<원문>

韓国在住の在日同胞として

私のおかれた立場で架け橋になるために

‐在日同胞4世 キム ウヒャン‐


 在日同胞は、歴史の狭間で生まれ歴史が生んだ存在だといっても過言ではない。日本植民地時代、第二次世界大戦、朝鮮戦争、朝鮮半島分断。様々な要因が重なり生まれた在外同胞は、アイデンティティの確立や、混乱、葛藤、時代の流れの中で、生き抜いてきた存在である。

 大阪府で生まれたキム ウヒャンは、ご両親の影響もあり幼いころからウリハッキョで学生生活を送り、泉州朝鮮初級学校付属幼稚園、泉州朝鮮初級学校、東大阪朝鮮中級学校、大阪朝鮮高級学校で学生生活を過ごした。

彼女は日本で生まれ育った在外同胞4世だ。祖父母、ご両親も日本で生まれ育ち、故郷は慶尚南道昌原である。いわゆる‘ザイニチ’である。


大阪朝鮮高校時代にはサッカー部のマネージャーをつとめ、高校サッカー選手権大会(冬に行われる高体連主催でもっとも大きい大会)で過去に全国8強に上り詰めた蹴球部‘ウリハッキョの名門’で裏方として選手達と共に青春を過ごした。


青春時代にスポーツの魅力に魅了され、スポーツの裏方の部分にやりがいを感じた彼女は、ウリハッキョを卒業をすると医療系の専門的な知識を得るために朝鮮大学には進学をせず、日本の学校の関西医療大学へと進路を決める。


初めて日本の学校での生活をスタートした彼女だったが、持ち前の明るさと社交性で互いに高めあえる友人達と出会い、学校では保健医療学を熱心に勉強し充実した大学生活を送る。そうして、夢である‘スポーツ選手の裏方のサポート’を叶えるために努力を重ね国家資格を取得。夢への一歩を踏み出すのであった。


しかしその傍ら、ある思いが彼女を動かすのであった。

ウリハッキョで青春時代を過ごし、選手と共にウリ民族としてスポーツに携わってきた彼女は、日に日に“ウリマルを使いながら医療分野やスポーツの分野で活躍したい”という思いを抱くようになるのであった。


日を重ねるごとに大きくなっていく思いであったが、ご両親からすぐにいい返事をもらうことができなかった。我が娘を、単身海外に送るのは相当な決断を要する。また、すぐに韓国に渡ってしまってはせっかく取得した国家資格もブランクができてしまうと心配し、まずは日本で経験を積んでほしいという親心もあったのだろう。そうしたご両親の思いもあり、金銭的な支援を受けずに一人で生活ができる準備が整ったらという約束のもと、大学卒業後はいったん医療分野で日本で働くことを決断したのである。


一旦、日本の医療現場で働きながらキャリアを積み、金銭的、精神的にも支援を受けずに生活できる基盤を着々と準備する生活を始めた彼女だったが、ある思いの変化が生まれる。漠然とあった夢であったが、‘日韓医療通訳’として、海を渡り挑戦をしたいと思うようになるのである

医療現場で働きながら着々と準備を進めた彼女は、仕事の合間や休暇を利用し韓国に渡り、自分の夢の為に医療分野やスポーツの分野の通訳養成の専門学校を見学しどんな生活雰囲気など入念な下調べを行い続けた。


 こうして2018年3月。

ついに心待ちにしていた‘故郷の地’に渡り、韓国での夢の実現を果たすための生活をスタートさせた彼女は、まず医療通訳の勉強を学ぶために、日韓医療通訳の養成課程を受講する。そこで、通訳に必要な専門知識を半年間みっちり学んだ後、ソウル駅の美容皮膚科の医療通訳として1年3カ月勤務し、経験を積むと2019年3月には日本へサッカー留学を控える高校生の日本語のレッスンを1カ月任され大阪に帰国。

さらに、その業務が終わった次の日には、女子水原都市公社サッカー団の大阪遠征に同行し、通訳兼マネージャーとしてチームを支えながら彼女たちを裏方で支えた。


元々は日本遠征だけのサポートだったが、そのサポートが高く評価され、4月から日本人選手の通訳として正式に 女子水原都市公社サッカー団の一員として加入することになり、スポーツの世界でもキャリアをスタートさせたのであった。


順調に見える一方で、彼女自身様々な葛藤と闘いながら韓国生活を過ごしていた。

日本にいる在日同胞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多種多様で、非常に複雑である。朝鮮半島がルーツであるため、祖国として考えていたり、韓国に渡れば受け入れてもらえると考えている人たちも少なくはない。

しかし、実際はなかなか難しいのが現実である。一緒の民族として手を差し伸べて温かく迎え入れてくれる人もいるが、在日という存在を知らない方が大多数を占めている。日本でも日本人ではなく、韓国にきても日本人として見られる不安は彼女自身もあったそうだ。



実際に韓国に渡りそのような経験もあったが、生活していくうちに理解して温かく手を差し伸べてくれる人の存在が彼女の心を動かし、理解してもらえない不安の気持ちよりも、在日という存在を理解している人たちへの感謝の気持ちへ変化していったのである。


葛藤と挑戦を繰り返しながら素敵な出会いにも恵まれ2020年に結婚。

日韓通訳をしている友人の紹介で知り合い、在日について全く知らなかったそうだが、自らインターネットで調べたり、彼女の友人、親戚などと交流を深め今ではウリノレ(ウリハッキョで歌われる歌)も歌うそうだ。



最後に彼女に一言頂いた。


「韓国に来たばかりの時は、一人で寂しく辛いときもありました。でも、努力を続け、たまに日本に帰るとウリハッキョのトンムや、在日社会の温かさ、環境を日本にいた時よりもより一層感じました。何よりも私が韓国で頑張っていることもの凄く応援してくれるんです。同時に簡単には作ることができないこのコミュニティを守って行きたいと強く感じました。私は私の置かれた立場で言語を使って人々の架け橋になり、日本社会で生まれ育ち、韓国に住む在日コリアンとしての存在価値を見出そうとこれからも努力していきます。」


在日同胞5世、6世と続いていく我々の存在を先代の方々の後を追い、次の世代に伝えていくのが3世、4世の使命であると筆者は強く感じたと同時に、韓国に住む在日コリアンの役割が大きいのではないだろうか。

キム ウヒャン氏の益々の活躍に期待し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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