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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식 행사에 다녀 와서.

작성자 몽당연필
작성일 22-05-17 16:58 | 433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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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간사이지역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교토부. 교토 역에서 자동차로 채 1시간 되지 않는 우지 시에 우토로 평화기념관2022430일 개관했다. 이곳을 잘 알지 못해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우토로마을의 역사는 해방되기 이전인 1943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 말기 일본 본토에 계획된 군사비행장 가운데 가장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중노동을 했던 곳이 우토로다

당시 건설현장에 모여든 약 13백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숙식을 한 곳은 함바(飯場)라 불리는 가설 숙소였다. 대규모 군사시설 건설현장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숙소는 그 당시 이곳에 살았던 이들이 열악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이 안 된다 했을 만큼 처참한 곳이었다. 대부분이 강제징용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온 조선인들은 비행장 공사의 기초인 땅고르기 작업에 종사했다. 합숙소였던 함바는 활주로를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흙을 파내 움푹 팬 땅에 지어진 가설 숙소였다. 일본의 패전으로 비행장 공사가 중단되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조선인들이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온 마을이 바로 우토로 마을이다. 80여년의 세월을 증명하며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유일하게 후세에 전할 평화기념관(祈念館)은 여느 기념관과는 달리 평화를 기원(祈念)한다는 의미의 한자를 쓴다. 어째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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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우토로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2007년 무렵이다. 강제퇴거 위기에 몰린 당시 마을의 풍경은 그 자체가 투쟁의 현장이었다. 마을 곳곳에 서 있던 입간판들이 호소하는 문장에서도 드러나듯 주민들은 당장이라도 살 곳을 빼앗겨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재판 제소과정과 동포들의 자구책 마련을 위한 노력도 이미 10여 년이 지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벼랑 끝 상황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우토로 마을에 수도시설이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을 지원해 왔던 이 지역의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과 조선총련 지부, 그리고 한국 시민들이 우토로 동포들을 돕기에 나선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야 시작된다. 식민지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우토로 마을은 이때까지도 일본 정부와 경찰 그리고 과격한 우익들의 표적이 되어 수차례 피해를 겪고 있었다. 일본의 패전 후 마을과 나란히 주둔했던 연합군이 물러간 후에는 일본의 육상자위대가 동일한 장소에 주둔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전쟁의 흔적 위에 세워진 평화기념관은 그 자체만으로도 평화를 호소하는 상징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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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이 자리한 곳은 토지문제가 해결되어 2018년에 완공된 제1차 시영주택 바로 옆이다. 1차 시영주택과 나란히 제2차 시영주택 건설도 한창이었는데 2023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자위대 주둔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기념관 앞마당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자리 잡은 옛 함바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216월에 마지막 남은 함바를 해체해 이곳에 보존해 놓았다. 함바 안에는 함바 시절을 살아온 주민들이 기증한 사진자료가 사방 벽에 전시되어 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공간이다.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왔을 세월이 흑백사진 속에서 옛 시절을 증언하고 있었다. 함바가 위치한 앞마당에는 수도시설이 없던 시절의 작두펌프도 설치되어 있는데, 기념관 부지의 높이가 인접한 도로보다 낮은 관계로 실제로 물을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방문객들이 저마다 손잡이를 잡고 펌프질을 해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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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3, 연면적 461의 기념관은 1층 내부가 독특하다. 이곳은 찻집 같은 공간이며 실제로도 가벼운 음료와 다과를 즐기며 대화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기념관 바로 옆 시영주택에 입주한 주민들이 언제든 이곳에 모여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곳이기에 방문객들이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교류도 할 수 있다. 낯선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주민들에게 과거 우토로 마을의 한 페이지를 듣는 기회도 누려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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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공간은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배열한 상설전시실이다. 외부에서 기념관을 올려다보면 2층 정면에 설치된 대형 사진이 있다. 우토로 마을 앞마당에서 주민들이 흥겨운 한 때를 보내는 장면이 담긴 사진인데, 우토로 지킴이로 몽당연필에도 잘 알려진 동포 3세 김수환 부관장이 찍은 사진이다. 2층 상설전시실에는 마을이 형성된 배경과 당시 생활상, 토지분쟁이 발발한 과정,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전시해 놓았다. 주민들이 기증한 기증품도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직접 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곳이 있다. 2014년에 세상을 떠난 2세 김군자 할머니의 방안을 재현한 공간인데, 생전에 할머니가 고단했던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즐기던 술과 술잔을 든 채 환하게 웃으며 방문객을 맞아주는 할머니의 등신대가 인사를 건네는 것 같기도 해 가슴이 찡하다. 김군자 할머니는 1차로 완공된 시영주택으로 입주가 시작되기 전에 인근 고령자 시설에서 안타깝게 눈을 감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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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인 김군자 할머니를 비롯해 세상을 떠난 1, 2세 우토로 동포들의 삶을 전시한 곳은 3층 특별전시실이다. ‘우토로에 살았던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전시된 넓은 공간에는 천정에서 바닥으로 전시 현수막들이 드리워져 있는데, 강경남 할머니를 비롯해 초대 주민회장을 지낸 김교일 회장, 문광자 할머니, 황순례 할머니, 강제징용 증언자 최중규 할아버지, 김임생 할아버지 등 십여 분의 역사를 꼼꼼히 기록해 놓은 공간이다. 개관행사 기간 중에 만난 주민들은 먼저 떠난 주민들이 모두 이곳 3층 특별전시관에 살고 있으니 그들을 만나러 기념관에 오게 된다고 말했다.


3층에서 계단으로 연결된 옥상 또한 기념관 주변을 조망하기에 놓칠 수 없는 곳이니 반드시 올라가 보시길 적극 추천한다. 기념관 우측으로 이미 완공된 1차 시영주택과 현재 공사가 한창인 2차 시영주택 건설현장은 물론이며 기념관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자위대 주둔지 내부까지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기념관 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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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우측 옛 우토로 마을 쪽에는 20218, 일본인 청년이 벌인 방화사건으로 인해 처참하게 불타버린 가옥들도 보인다. 현재도 몇몇 주민들이 살고 있는 이곳 또한 내년이면 집들이 철거될 예정인데 새로 완공될 2차 시영주택으로 남은 주민들이 이주한다고 한다. 화재현장은 우토로 마을이 일상적으로 겪었을 불안과 단단히 꼬여버린 일본사회의 역사인식이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했다. 방화사건은 현재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데, 1심 재판(516일 교토 지방법원)에서 범인이 기소내용을 인정하면서 혐오와 차별의 범행동기가 법정에서도 인정되었다. 기념관이 완공되기 직전에 벌어진 이 사건의 결과는 평화기념관의 향후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일본 국내는 물론 한국에서도 그 결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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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일 오전 10시 개관식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걸쳐 기념관 개관행사가 다채롭게 열렸다. ‘아리랑을 부르며 개관식의 문을 연 우토로 출신의 3세 가수 정아미 씨의 미니콘서트, 극단 <달오름>의 마당극 우토로’,영화 <우토로-가족의 마을> 상영, 동포 3세 판소리꾼 안성민 씨의 판소리 공연과 교토가무단, 히가시쿠조마당의 풍물공연 등이 잇달아 개최되었다. 행사주간 첫날과 마지막 날에는 심포지엄도 기획되었는데, 첫날 심포지엄에서는 우토로 평화기념관의 의의라는 주제로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초창기 멤버들과 기념관을 설계한 동포 문청현 씨, 우토로 농악대 멤버로 활동한 일본인 도이 이츠키 씨 등이 참석해 기념관이 건립되기까지 과정을 소개하고 향후 기념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마지막 날의 심포지엄은 젊은 지원자들이 주최했는데 세대를 이어 기념관의 가치를 지켜 나가려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든든하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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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식 주간 동안에 단연 돋보인 존재는 우토로 주민들이 만든 <농악대> 공연이었다. 퇴거소송에서 완전 패소한 이후 1989년 가을에 만들어진 농악대는 우토로 여성들이 모여 시작되었다. 부모들이 살아왔고 자신들도 자녀를 키우며 살고 있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며 직접 장구와 북, 꽹과리를 들고 거리에서 존재감을 알렸다. 농악대의 중심역할을 맡은 홍정자 씨는 59세가 된 2014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홍씨와 함께 농악대를 이끈 김순이 어머니가 개관식 축하공연이 끝난 후 마이크를 잡았고 먼저 떠난 멤버들을 대신하듯 감개무량한 이날의 기쁨을 담담히 전하기도 했다. 20년 만에 다시 모인 대부분의 멤버들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힘차게 악기를 연주하며 기념관 건립을 축하했고, 이 무대는 개관행사 가운데서도 압권이었다. 무대 옆에는 기념관 건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농악대 멤버들이 사진 속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는데,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오래도록 깊이 남을 장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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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토로 평화기념관>은 말 그대로 작은 통일이 응축된 장소이다. 내년이면 옛 우토로 마을의 모습도, 조선인 아이들이 모여 우리말을 배운 학교 자리에 세워진 <에루화>건물과 나머지 가옥들도 모두 사라진다. 우토로의 역사를 증언해 줄 마지막 남은 장소가 바로 평화기념관이다. 그 가치와 무게는 이곳을 관람한 이들이 널리 전해야 할 것이다.

주민들은 길고 긴 세월동안 우토로 마을을 지키며 살아왔고, 이곳을 고향으로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기념관에 머물며 이곳을 찾아올 고국 땅의 동포들과 일본인들 그리고 후세들을 기다릴 것이다(사진제공 : 김현태님, 최상구님, 나카야마 카즈히로님)


정미영(출판팀장) 


* 우토로 디지털 아카이브 : https://utoro.kin.or.kr/


* 관련 도서 소개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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